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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간 기분이 안좋아요
    일상 2017. 11. 14. 15:44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새벽 6시쯤 현관문을 닫고 집을 나서는데 노오란 뭔가가 눈앞을 스친다. 돌아봤더니 현관문에 붙어있는 낯선 노란 포스트잇. 허걱... 아마도 아랫집 사는 처자가 붙여놨나 보다. 출근길 내내 몰래 오줌누다 걸린 모냥 얼굴이 화끈거린다. 일 년 동안 거의 마주칠 일이 없었지만 앞으로 마주치면 어쩌나.

    그게 오줌소리가 아니고 샤워소리를 잘못 들으신 것 같네요...라고 하기엔 '남자소변소리'라고 구체적으로 명시한 걸로 봐서 아주 제대로 들은 것같고, 애시당초 그시간이면 내 오줌소리가 확실하니 딱히 변명할 거리도 생각나질 않는다. 아니, 새벽녘 내 오줌소리가 그렇게 컸나? 도대체 방음이 얼마나 안되면 그 물줄기 소리가 아래집까지 울려퍼진단 말인가. 

    한편으론 내 집에서 내가 오줌도 시원하게 못싸나 싶기도 하다가, 누군가는 내 오줌소리로 아침을 열었다는 걸 생각하면 한없이 미안해진다. 저걸 저렇게 손수 써서 저렇게 붙여두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까? 부끄러우면서도 민망하고 미안하지만 그것을 이길만큼 내 오줌소리가 짜증이 났던 게지. 오죽하면 '노란색' 포스트 잇으로 붙여놨을까. ㅠㅠ 

    그리하여 이제부터 내 소변자세를 앉아쏴 모드로 변경하게 되었다. 서서쏴에 비하면 앉아쏴가 많이 불편하다. 오줌 한 번 싸려고 바지 전체를 내려야 하고, 차가운 변기에 궁디를 대야 하고, 게다가 웅크린 자세로 소변을 보다 보니 서서쏴보다 시원한 맛이 없다. 물론 오줌이 여기저기 튀지 않는다는 깨끗함은 있지만 나랑은 상관 없다는 이기심이 컸었다. 

    신혼 초반, 와이프가 앉아서 싸라고 그리 얘기했건만 그 땐 들은체도 안했었는데 이렇게 남의 말 한마디에 바꿔버리니 괜시리 와이프에게 미안해진다. 생각해보면 이런 일들이 많다. 가장 가까운 사람 말은 잘 듣지 않으면서 타인의 말 한마디는 신경쓰게 되는 따위의 일들. 가까운 만큼 무감각해지는 나쁜 인간의 습성. 이제야 바꿔 미안하지만 이제라도 바꾸게 되니 겸사겸사 잘 된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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