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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의 모든 기억은 소멸되므로
    일상 2017. 11. 29. 10:06

    막연히 기다리던 시간이 코앞에 다가왔음을 느꼈다. 어젯밤 자정 무렵이었다. 와이프 배가 자꾸 뭉치는데 잘 풀리지 않고 평소와는 느낌이 좀 다르다며 병원에 가보잔다. 입원을 대비하여 와이프가 미리 이것저것 캐리어에 담아 두었는데 막상 출발하려고 보니 난 아무것도 준비를 한 게 없더라. 캐리어 좀 미리 차에 실어 둘 걸. 카메라 좀 미리 충전해 둘 걸. 병원 전화번호 좀 미리 저장해 둘 걸. 진오 물건도 좀 미리 챙겨 둘 걸.

    그러나 아무런 준비가 없었더라도 우리는 금세 출발했을 것이리라. 맘이 급해지니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게 느껴졌을 뿐. 금세 병원에 도착해 응급분만센터를 찾았다. 그제서야 첫째 때의 기억이 돌아왔다. 그래, 도착하면 진통 검사를 한다고 꽤 오랜 시간 밖에서 기다렸었지. 자정 무렵 산통으로 병원을 처음 찾은 것도 첫째 때랑 같았다. 첫째 때는 산부인과로 유명한 병원이라 진통 검사하느라 대기시간도 훨씬 더 길었었다. 결과는 진통이 아닌 짭통(?)이었지만.

    이번 산부인과는 비교적 작아서 자정 무렵의 병원은 무척 고요했다. 오래 걸릴 줄 알았던 진통 검사는 금세 결과가 나왔다. 이번 역시 짭통. 아직은 때가 아니니 돌아가서 좀 더 기다려 보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와이프도 진통 검사를 받고 나니 이제서야 첫째 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단다.

    역사는 승자들의 거짓말이 아니다.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101 page

    집에 돌아오자마자 카메라를 충전기에 연결하며 기억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인간의 모든 기억은 소멸되므로 최대한 남겨야 한다. 그렇게 남은 기록이 보는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해도 지금 나에겐 남기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막연한 기다림이 당면한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부터 난 오분 대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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