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꿈속의 결혼식
    일상 2013. 1. 5. 10:47

    드디어 날을 잡았다. 상대는 키가 훤칠하고 잘생긴 일본인, 다나까 오차즈께(가명)상이다. 선 한번 보고 바로 결정해버렸다. 나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사람은 아직 결혼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나에겐 결혼이 더 필요했다. 집 근처에서 사랑했던 그 사람을 만났다. 난 사실을 이야기했고 우린 눈물을 흘렸지만 마음속으로는 이미 서로를 놓아주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식날이 밝았다. 동호회 사람들과 양재역 근처에 있는 산에서 등산을 하고 양재역에서 헤어질 때 쯤 이야기했다. 좀이따 결혼해서 택시타고 먼저 간다고. 사람들이 뭔소리냐고 눈이 땡그래지며 다그치자 진실된 표정으로 한사람 한사람 포옹을 하거나 악수를 청하며 시간되면 이따 시간 맞춰서 식장에 오라고 이야기했다. 사실 조촐하게 하려고 모든 절차를 생략했었다. 아는 사람들만 오도록. 글쎄, 왜이리 결혼이 급박하게 돌아가는지 모르겠지만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어버렸네.


    양재역에서 택시를 타고 삼십분정도 달리자 일본 어느 시골에있는 낡은 2층짜리 식장에 도착했다. 나도 생전 처음 보는 식장이었다. 이제 앞으로 예식이 30분밖에 안남았건만 건물 벽에는 이전 타임 결혼식 사진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근데 가만... 우리가 저기에 넣을 사진을 찍었던가? 결혼상대는 선 본 이후로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결혼 준비업체에서 모든걸 알아서 할테니 그냥 맘 편히 있으면 된다는 말이 생각나 안심이 되었다. 뭐, 곧 어떻게든 되겠지. 


    대기실에 들어가 옷을 입으려고보니 어제 비를 홀딱 맞아서 세탁기에 돌리고 널어둔게 생각났다. 난 양복이 한 벌 뿐인 단벌신산데 큰일이다. 다행히 사촌동생이 집에 있는데 곧 가지고 온다고 한다. 일단 먼저 화장을 하기로 했다. 음... 화장은 처음인데? 지금까지 항상 화장 없이 맨얼굴로 남자처럼 살아왔었다. 화장을 하면 정말 아름다워질지도 모른다. 어쩌면 눈부시게 변한 내 모습을 보고 내 정체성에 눈을 뜰지도. 혹시 그렇게 된다면 이런식으로 만나 급하게 결혼할 필요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멋진 남자들이 빗발쳤겠지. 응? 잠깐... 난 여자가 좋은데 남자가 빗발치다니. 난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결혼상대는 남자네. 그럼 나는 여자여야하고. 그렇게되면 나는 여자를 좋아하니까 나를 사랑해야하나? 아니, 아니지... 이건 뭔가 잘못됐다! 나는 남자잖아?!


    엄마한테 달려가 물었다. "엄마, 나 남자랑 결혼해?" "그걸 이제 알았냐? 그르니까 이 먼 일본까지 와서 결혼식을 올리지!, 쉿!" 헉... 어쩌다가 이렇게 된거지? 이미 결혼식 15분전이다. 식장은 점점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하고, 결혼 비용도 포기하기 아까울만큼 지불했고, 남자랑 산다는건 생각할 수록 역겹고, 난 여자와 살고 싶고, 아무리봐도 이 결혼은 백퍼센트 이혼으로 끝날 것 같고... 모든게 엉망임을 깨닫자 비로소 나는 이제 깨어나야 할 시간임을 알았다. 온 힘을 다해 눈꺼풀을 열어젖히니 아침 9시 반. Good morning~!




    댓글

© ZNOFL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