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가 들수록 겁이 많아지는 것 같다. 예전엔 메뚜기도 튀겨먹고, 영화속에 귀신이 나오거나 잔인한 장면이 나와도 얼굴 한번 돌린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젠 문밖에 곱등이 한마리에도 온 몸의 털들이 쭈뼛쭈뼛 서고, 조금만 잔인한 장면이 나와도 사팔뜨기를 하거나, 눈에 초점을 풀어버리고 만다. 확실히 변했다. 어디선가 그러더라. 몇년이더라? 인간의 모든 세포가 모두 죽고, 새로운 세포로 교체되는 주기가 있어, 그 주기로 인간은 물리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된다고. 내 몸은 용감한 세포들은 다 죽고 겁쟁이 세포들만 태어났나보다.
요즘 그런 늙은 겁쟁이 세포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새로운 두려움이 하나 생으니, 바로 음식물 쓰레기통이다. 락엔락 음식물 쓰레기통인데 이놈이 성능 하난 죽이더라. 이사온 후로 두달가량 모인 음식물들이 쓰레기통 안에서 이중결착구조로 완전히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물러버린 참외며 각종 과일 껍데기, 굽다만 삼겹살, 하수구에 걸린 음식물 찌꺼기등등... 락앤락의 이중결착구조가 아니었다면 쓰레기통 속 단백질들이 산소를 마시고 무시무시한 괴생명체로 변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과 단절되어 있어도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려면 뚜껑을 열어야한다. 아욱~ 열었을 때의 그 냄새란... 내가 공포를 느끼는건 그 냄새인지 아니면, 서로 어울리지 않는 음식물쓰레기의 비쥬얼 때문인지 확실치는 않다. 확실한건 난 뚜껑을 여는것이 두려울 뿐이다. 그 두려움 때문에 더 살이찌고있는지도 모르겠다. 되도록이면 버리지 않으려고 먹고, 상하기 전에 먹고.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음식물 쓰레기는 생기고 만다. 그럴땐 쓰레기통을 열기 전, 코는 막고 입으로 숨쉬면서 최대한 쓰레기들과 시선은 마주치지 않고 최대한 신속하게. 그런데 그런 쓰레기통이 이제 거의 다 찼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쓰레기통을 비워야 하는 상황이다. 생각만해도 돋는다, 소름이.
고약한 냄새는 왜 고약하다고 느끼는 걸까? 음식물 쓰레기의 비쥬얼은 왜 헛구역질을 유발하는 걸까? 혹시... 자기 최면이 가능할까? 고약한 냄새는 향긋하고 침고이는 음식 냄새로, 쓰레기 비쥬얼은 맛있는 비빔밥처럼 보이도록 말이지.
[쇼가야키, 스튜, 엇그제 먹다 남아 포장해온 둘둘치킨 네조각, 밥, 깻잎... 버리지 않으려고 어제 내가 이걸 혼자 다 쳐먹었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