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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적인 체험
    리뷰 2012. 9. 3. 12:32


    개인적인 체험

    저자
    오에 겐자부로 지음
    출판사
    을유문화사 | 2009-07-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오에 겐자부로의 대표작!노벨 문학상 수...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가엾고 비참한 아기, 라고 버드는 생각했다. 내 아기가 이런 현실 세계에서 처음 만난 인간이 이렇게 뒤룩뒤룩 살이 찌고 털투성이인 작은 남자였던 것이다. - 41 page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하면서 구급차가 출발한다. 버드는 차의 진동에 밀려 의자에서 미끄러져 떨어질 것만 같아 혼신의 힘을 모아 발을 버티며, 이 사이렌! 하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사이렌은 버드에게 있어 늘 그저 먼 곳으로부터 다가왔다가 그 옆을 스쳐 지나 멀어져 가는 일종의 운동체였다. 하지만 지금 사이렌은 그의 내부의 질환처럼 그에게 들러붙어 있다. 그것은 언제까지나 멀어지지 않는다. - 45 page

    사이렌에 놀란 통행인들은 버드가 등뒤에 두고 온 임산부의 무리와 마찬가지로 호기심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기대를 드러내며 구급차를 지켜보았다. 그들에게는 필름이 갑자기 정지한 화면과도 같은 부자연스런 동작 정지라는 인상이 있다. 그들은 지금 평범한 일상생활의 극히 미세한 금을 들여다본 참이다. = 48 page

    초로의 이발사가 극히 일반적인 접객 태도로 버드를 의자에 앉혔다. 그는 버드에게서 불행의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버드는 지금 이발사라고 하는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이 되어 보임으로써 슬픔과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 - 56 page

    식물과 같은 아이에게 있어 이 외부 세계 체재는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은미(隱微)한 고통의 몇 시간에 지나지 않으리라. 그러고 나서 숨 막히는 한순간이 있고 그리고 또다시 그는 몇억 년에 걸쳐 무(無)의 광야의 미세한 무(無)의 모레알 그것이다. 설령 최후의 심판이 있다고 한들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죽어 버린 식물과 같은 기능의 갓난아이를 어떤 사자(死者)로서 소환하고 고발하며 판결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 57 page

    지금 히미코는 이미 젊은 아가씨의 무방비한 아름다움을 잃어버렸고 더구나 다음 연령의 충실감을 획득하기엔 이르지 못한, 어정쩡하기 이를 데 없는 빈약한 상태였다. - 70~71 page

    버드는 나쁜 패가 계속되는 카드놀이에서 잠시 빠지듯이 얼마 동안 이 세계에서 내리고 싶은 것이다. - 84 page

    몸의 가장 깊은 중심에 극심한 고통과 불안감이 뒤섞인 종양 같은 것이 생겼고 그것은 틀림없는 욕망, 그것이었다. 심근 경색증 환자를 늑골 안쪽에서 사로잡는 통증과 불안감을 닮은 욕망. 더구나 그것은 그의 의식 높은 곳에서 빛나고 있는 아프리카 여행의 꿈과는 대극점에 놓인 축 쳐져 안온한 일상생활의 하나의 사마귀 같은 것에 불과한 욕망, 주에 몇번인가의 아내와의 성교에 의해 폄하되며 해소되는 점잖은 욕망, 무기력하고 외설스런 우욱 하는 한 번의 신음과 함께 서글픈 피로감의 진창에 빠지는 가정적인 욕망과는 다른 것이었다. 수천번이나 되풀이되는 성교에 의해서는 해결될 수 없는 욕망. 한 바퀴 돌고 나면 거둬가 버리는 놀이공원 유람 전차의 차표 같은 욕망과는 다른 욕망. 욕망 가운데 가장 격렬한 욕망, 엄밀히 반복 불가능한 것이어서 그 달성의 순간에 땀에 젖은 알몸의 등 뒤로부터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할 정도의 위험한 욕망. 그것은 몇 년 전 겨울 한밤중의 목재 창고에서 만약 버드가 자신이 한 처녀를 강간하고 있는 것이라고 충분히 알고 있었더라면 채워졌을지도 모를 욕망이었다. - 87~88 page

    "사모님께는 신생아 뇌에 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내장이 좋지 않다고 해 두었습니다. 뭐, 뇌도 내장임엔 분명하니까 거짓말은 아니지. 완전히 거짓말로 급한 불을 끄려다가는 그 거짓말이 탄로 났을 때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하니까!" - 157 page

    "설령 그것이 질투에서 나온 말이라 하더라도...
    (...중략...)
    나는 그녀가 말한 것들로부터 아무런 상처없이 도망치진 못해." - 197 page

    타인들의 공통된 세계에서 인간 일반을 위한 오직 하나의 시간이 진행되고, 온 세상 인간이 한 가지로 겪게 될 나쁜 운명이 형성되어 가고 있다. 하지만 버드는 그의 개인적인 운명을 지배하고 있는 아기 괴물의 요람에만 매달려 있다. - 252 page

    버드는 확신도 없이 요람을 흔들어보는 둥 해 가며 납작한 단화를 신고 달려가는 애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같은 또래 일본 여자들 가운데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 중 하나이지만 그 교육은 부질없이 썩어가고 있었고 그녀에겐 극히 일반적인 여자들의 일상생활의 지혜조차 없다. (...중략...) 젊음과 페던트리(pedantry)와 자신이 넘치던 그 여대생의 미래에 그 누가 이런 히미코를 예상했으랴? - 257 page

     

    뇌관련장애를 가진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서 실제로 겪었던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후 일본에 두번째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오에 겐자부로의 대표작으로 예전부터 읽어봐야지 생각만하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이 역시 정혜윤님의 '삶을 바꾸는 책읽기'의 영향이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소재 자체가 조금 불편한 내용이라 읽기 꺼려졌던 점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불편함때문에 긴장감도 생겨서 오히려 몰입해서 읽게 되더라. 소재만으로 글을 판단하는건 정말 바보같은 짓임을 깨닫는다. 똥을 소재로 한다해도 겐자부로라면 전혀 냄새 안나게 쓸 수 있을테니까.


    처음 접한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이어서인지 초반 몇장은 난독증때문에 정말 답답했다. 문장들이 너무 함축적이고 게다가 길었다. 한 문장 읽었는데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못알아먹겠더라구. 그런데 그건 딱 한챕터까지만. 조금만 집중해서 읽어보자하면서 한 문장, 한 문장 집중했더니 그제서야 조금 적응이 되었다.


    조금 적응하고 났더니 와~, 그제서야 멋진 문장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소설인데도 가끔은 마치 시 한 구절을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소한 묘사 하나하나까지 펼쳐져 있던 완벽한 문장들. 책을 읽어갈수록 접어두기 바빠서 책 아래쪽은 점점 두꺼워져만 갔다. 그런 문장들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그 느낌은 뭐였을까? 문장에서 느껴진 아름다움일까 아니면, 그런 문장들을 자유자재로 써내려가는 능력에 대한 부러움이었을까? 잘 모르겠지만 '이런게 노벨문학상급 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직까지 별일없이 평범하게 살고있다.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 정말 아무런 별일도 없는 것이다. (겐자부로는 결혼을 하면서부터 '별일'이 시작 된 것이리라.) 별일 없던 주말, 간접적으로나마 그의 직접적인 개인적 체험을 경험하게 되어 뜻깊은 주말이었다. 행여 앞으로 내가 '별일'을 겪게 된다면 분명 그의 소설이 큰 힘이 되어줄 것 같아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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