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그대로 작가가 파리와 런던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며 얻은 통찰의 기록으로,
『동물농장』,『1984년』으로 유명한 조지 오웰의 첫 작품이다.
아직 위에 두 책들도 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흥미가 생긴다.
작가의 튀지않는 위트와 가끔은 바보가 아닐까 할 정도로 선한 심성이 마음에 들었다.
가난과의 첫 만남인데 이것이 너무나도 이상하다. 가난이라면 정말 생각도 많이 했고 평생 두려워해왔고 조만간 닥쳐온다고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닥치고 보니 완전히 다르고 또 시시하게 다르다. 아주 단순하리라고 여겼는데 복잡하기만 하다. 끔찍하리라고 여겼는데 그저 궁상맞고 따분할 따름이다. 처음에 발견하는 것은 가난의 독특한 비천함, 어쩔 수 없이 겪는 변화, 복잡스러운 쩨쩨함, 떨어진 빵을 털어서 먹는 일 따위이다. - 22 page
이 불결하고 작은 식기실을 둘러보면서 우리들과 저 식당 사이에 양날개 문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재미있었다. 식당에는 깨끗한 식탁보, 꽃병, 거울, 금박 처마 장식, 아기 천사 그림 등 온갖 화려함을 누리는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불과 몇 자 떨어진 이 곳에서 우리는 혐오스럽도록 불결했다. - 88 ~ 89 page
교훈은 웨이터를 불쌍히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때때로 당신이 문 닫는 시간이 30분 지났는데 음식점에 앉아 꾸역꾸역 먹고 있다면, 당신 옆의 저 지친 웨이터가 당신을 경멸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그는 당신을 쳐다보면서 "저 과식하는 촌뜨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언젠가 나도 돈을 모으면 저 사람 흉내를 낼 수 있을 거야." 하고 생각한다. - 101 page
주변 환경에 대한 섬세한 관찰력은 내가 마치 그 시대의 파리와 런던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악취, 지저분함, 배고픔, 추위, 불편함... 온갖 더럽고 힘든 것들이 손에 잡히고 보인다.
본질적으로 "고급" 호텔은 200명이 정말로 원하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바가지를 쓰도록 100명이 악마처럼 고생하는 장소이다. - 155 page
우리는 벌거벗고 떨면서 복도에 줄을 섰다. 무자비한 오전의 햇빛을 받고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피폐하고 쇠잔한 잡견처럼 보였을지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부랑인의 옷은 형편없지만 그래도 더 형편없는 것들을 가려준다.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부랑인을 보려면 벌거벗은 모습을 보아야 한다. - 193 page
"무지하게 웃겨!" 하고 그가 말했다. "〈펀치〉(역주 : 1841년에 창간된 익살스러운 내용의 잡지)에 날 만큼 웃겨.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뭔데요?"
"면도부터 하지 않고 면도칼을 팔았어. 바보중에 바보야!"
그는 아침부터 먹지 못했고, 비틀린 한쪽 다리로 몇 킬로미터를 걸었고, 옷은 흠뻑 젖었고, 반 페니로 굶주림을 막아내야 했다. 그런데도 그는 면도칼을 잃은 것을 가지고 웃을 수 있었다. 그를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 247 page
현재로서는 가난의 언저리까지밖에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돈에 쪼들리면서 확실히 배워둔 한두 가지는 짚어낼 수 있다.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내가 1페니를 주면 걸인이 고마워하리라 기대하지 않겠으며, 실직한 사람들이 기력이 없다고 해도 놀라지 않겠고, 구세군에는 기부하지 않을 것이며, 옷가지를 전당 잡히지도 않겠으며, 광고 전단지를 거절하지도 않겠고,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 284 page
집이 서울역 부근이라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집부터가 동자동 쪽방촌 부근...
언제 어디서든 자주 마주쳤으면서도 책을 보기전엔 그들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항상 주변에 소주병이나 막걸리병을 달고 사는 그들을 보면 그냥 좀 불쌍하다는 느낌 정도였지,
그 밑바닥 프로세스가 어떠할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70여년전 파리, 런던과 지금의 서울과 직접 비교하기는 무리겠지만 어느정도는 비슷하리라.
책속에 나오는 7펜스짜리 숙소는 집 앞에 있는 쪽방정도 되려나?
그저 안타깝다...
책을 읽고 좀 알게 되었다지만...
안들 뭐 도울 수도 없고 이게 뭐 한순간에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그저 나 한 사람이라도 더럽고 주정만 부리고 필요 없을 것 같은 부랑자들을 보며
이게 다 썩어빠진 사회 때문이라는 인식 변화를 가져왔다는 데에 만족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