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의 다른 모든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내 몫의 고통을 겪었고, 오랫동안 이어진 폭력과 동란의 시간들을 헤쳐 왔으며, 내 영혼에 새겨진 상실의 흔적들을 지니고 있다. - 74p
열정은 언제나 한 가지만을 제외하고 다른 모든 것에 무관심하게 마련이어서 미스터 블랭크에게 있어 바닷가에서 셀 가치가 있는 조약돌은 오로지 하나뿐, 만일 그 하나를 가질 수 없다면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 105p
그는 목청껏 소리를 지른다. 바보! 바보 같은 늙은이! 너 도대체 뭐가 어떻게 잘못된 거냐? - 108p
다른 것은 몰라도 자기의 미래를 예상하는 데서는 비관적이지 않은 그는 끊임없이 불확실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에 다시 한 번 더 체념하고 만다. - 152~153p
선생님에게는 느끼는 대로 느낄 권리가 있으니까요, 미스터 블랭크. 그건 선생님 잘못이 아니에요. - 158p
당신 몸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지요? - 167p
이제 보니 추잡한 노인이시군요, 미스터 블랭크. 그녀가 놀린다. 나도 알고 있소. 그가 되받는다. 하지만 나는 추잡한 젊은이이기도 했다오. - 170p
과천도서관에서 뉴욕3부작을 빌리면서 비교적 얇고 행간이 넓은 이 책을 같이 빌렸다. 실은 달의궁전을 빌리고 싶었지만 심리적인 안정감을 위해 달의궁전은 포기했다.(두께도 두꺼운주제에 빼곡하게 들어찬 글씨들에 토나올 뻔 함)
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뉴욕3부작의 등장인물들이 여기저기 막 튀어나온다. 단순히 이름만 같은게 아니라 그들의 역사가 일치한다. 이게 뭔가. 단순히 두께가 얊아서 우연히 빌린 책이 뉴욕3부작의 후속권이었단 말인가? 아니면 폴 오스터의 모든 책들이 이런 방식인건가? 같은 캐릭터가 그의 여러 책을 오가는 모습을 보니 창조해 낸 캐릭터들을 참 소중히 여기는것 같아 장인정신이 옅보이는 한편, 좀 새로운 걸 원했는데 계속 등장하니 식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반쯤 갔을 때 눈치 챘다. 이 책이 그럴 수 밖에 없는 책이었음을.
이 책은 뉴욕3부작보다 더욱더 적나라한 작가의 자신적소설이었다. 서사방식 역시 뉴욕3부작보다 더욱더 뚜렸한 액자구성이다. 참 독특한 소설이었다. 정말 내가 작가가 되어 글을 쓰는 경험을 해본 듯한 느낌이었다. 짧은 책이었지만 역시나 풍부한 이야깃거리로 지루하지 않았던 책이었다. 이 책은 폴 오스터의 이전 작품들을 모두 읽고 난 뒤에 읽어야 더 실감나는 책이 될 것 같다.